2022년 06월 30일

꼬꼬무 형제복지원 사건, 대체 뭐길래?…실체에 ‘충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정규 개편 첫 방송으로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다뤘다.

2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는 ‘연쇄 실종사건 1987, 인간 청소’라는 부제로 ‘형제 복지원’ 사건이었다.

1982년 9월 리어카 장수 정 씨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모친이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병수발을 들고 대소변을 받고 밥도 지을 정도로 효자에 똑똑해서 시험을 보면 반에서 1등을 했던 아들이었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그러나 아들 연웅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12살의 연웅이는 연탄 가게 형과 함께 부산역으로 놀러 갔다가 사라졌고 이에 연웅이의 아버지는 실종 신고를 냈지만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 판단을 내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40년 전 사라졌던 연웅이는 살아있었다. 그의 현재 나이는 쉰. 쉰 살이 된 정연웅 씨는 “그때가 12살이었고 4년 7개월 정도 갇혀있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연탄 가게 형과 함께 부산역으로 갔던 연웅이는 형의 친구를 함께 기다렸다. 그런데 그들 앞으로 남자 둘이 다가와 이들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그리고 약 1년 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7살과 5살의 혜율이 남매는 이혼 후 대전으로 떠난 엄마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랐는데 잠이 든 사이에 종점인 부산역에 도착했고 이후 연웅이를 데려간 남자들이 다가와 집을 찾아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두 아이도 실종됐다.

충격적이게도 아이들을 데려간 이들의 정체는 바로 경찰. 이들은 아이들을 차에 몰아넣어 어딘가로 데려갔고 머그샷을 촬영했다. 그리고 그 후 아이들은 이름 대신 숫자로 불렀다. 아이들은 죄수처럼 밤낮없이 장롱, 신발, 장난감 등을 만들었다.

그곳은 거대한 공장이자 거대한 요새 강제 노역 시설인 이곳은 바로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린 형제복지원이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부랑인’이었다.

당시 부랑인의 기준은 지하철이나 열차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갔거나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TV를 보고 야외에서 음주를 하거나 주정을 부리고 며칠 동안 수염을 깎지 않아 덥수룩해진 이들이었다. 이 중 하나만 해당되어도 부랑인으로 여겼다.

그러던 1986년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김용원 검사가 포수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원생들의 강제 노역 현장을 발견하고 수사에 착수했고 부산 형제복지원으로 향한 김용원 검사는 형제 복지원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순간 이를 본 이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무려 축구장의 4배 정도 규모인 8,759평의 형제 복지원에는 수용인원 3,164명에 그중 미성년자만 900명이 넘었다. 또한 이곳에는 정신 병동까지 만들어져 원생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형제 복지원은 불법 감금, 폭행, 성폭행, 강제 노역, 횡령 등 범죄 소굴이었다. 또한 그곳에서 사망한 인원은 총 513명으로 밝혀졌으나 이는 원장의 주장일 뿐 원생들의 증언은 달랐다. 아파서 모두 자연사했다는 원장의 주장과 달리 시신 암매장, 시신 소각에 관한 증언이 이어졌고 심지어 해부용 판매 증언까지 나왔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던 박 원장은 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제대로 된 처벌을 피해 갔다.

박 원장은 “전두환에게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형제복지원 홍보 영화까지 만들어준 것으로 드러났다. 군인 출신이었던 박 원장은 부랑인을 데려와 인건비를 주지 않고 일을 시키면 돈이 된다고 생각해 형제복지원을 세웠다.

1981년 88 서울 올림픽이 결정되면서 전두환 대통령이 환경 미화 작업의 일환으로 부랑인들을 잡아들이고 ‘인간 청소’를 하라고 지시했던 것도 형제복지원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형제복지원에서는 12년 동안 513명이 사망했지만 형제복지원 측은 자연사를 주장했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김용원 검사는 박 원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려 했으나 당시 부산시장에게 전화가 와 박 원장을 풀어주라고 했고 검찰 상부에서는 횡령액을 7억 원 이하로 줄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결국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면서 형제복지원 부산 본원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박 원장은 울산 공사현장 특수감금과 횡령죄로만 기소가 됐다. 박 원장은 최종 판결에서 횡령죄 일부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벌금은 0원이었다.

박 원장은 출소 이후 또 복지시설을 열어 장애인,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며 국가예산을 계속 받았으며 온천, 스포츠센터, 대규모 골프장 등을 열기도 했다. 박 원장은 제대로 된 처벌을 끝까지 받지 않고 201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

손여진 기자
zzzni03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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