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03일

‘꼬꼬무’ 우순경, 최다 살인 기네스북에 올라→이유가 ‘파리’때문? (충격)

기네스북에 오른 순경 우범곤의 총기 난사 사건이 재조명되며 위령비도 세우지 못한 유가족들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1월 2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대한민국 악인 열전-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편이 전파를 탔다.
 
1982년 4월 26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이곳은 6.25 때 인민군도 못 찾은 산골마을이었다. 이날 반상회를 위해 주민들이 한곳에 모여있던 중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렸고 주민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그때 누군가 주민이던 ‘전원배’씨를 찾았다. 우체국에서 교환원으로 일하던 그의 막내 여동생이 죽었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들었다. 전원배씨는 밖에서 울려 퍼지는 총소리에 겁을 먹고도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우체국에는 끔찍한 현장이 펼쳐졌다. 전원배씨 동생 전은숙씨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모두 죽어 있었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누군가 마을을 외부와 단절 고립시키려 우체국을 노렸고 이에 우체국 직원들이 모두 참변을 당했던 것이다. 우체국뿐 아니라 우체국 바로 앞에 있던 궁류 지서(오늘날 지구대)도 멀쩡하지 못했다. 유리창은 다 깨져있고 근무하던 경찰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또다시 우체국에서 600미터 정도 떨어진 압곡리에서 총성이 다시 시작됐다.
 
총소리에 이어 수류탄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북한에서 무장공비가 내려온 줄 알았다. 그런데 범인을 직접 목격한 주민이 있었다. 범인은 단 한 명이었다. 그는 혼자 소총 2자루와 수류탄을 들고 있었다. 범인은 불을 켜진 집만 찾아 집집마다 다니며 총을 쏴 무참히 살해했다.
 
불을 켠 집과 달리 불을 끈 집들은 목숨을 구했다. 당시 이 마을의 택시 운전사 전 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불 끄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라고 외치고 다니다가 골목길에서 범인의 총에 맞아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범인은 한 시간도 안 돼 19명을 살해했다. 그리고 범인이 운계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운계리의 한 슈퍼를 찾은 범인은 문을 두드리며 슈퍼 안주인에게 사이다를 하나 달라고 했고 슈퍼 주인은 어떤 경계심도 없이 문을 열어 그에게 사이다를 건넸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이유는 슈퍼를 방문한 범인이 경찰 제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 27살 궁류지서 순경 우범곤이었다. 이에 주민들은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도 못 했다. 우순경은 무슨 일이냐는 주민에게 아무렇지 않게 “공비가 나타나 비상이 걸렸다”라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사이다를 모두 마신 후 총을 장전해 바로 발사해 주민들 살해했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우순경은 태권도 3단, 합기도 3단, 특히 뛰어난 게 사격이었다. 해병대 시절 특등사수로 유명했다.
 
우순경은 총기 난사 사건 4개월 전 서울시경에서 근무하다 사고를 쳐서 이곳으로 좌천됐고, 내려온 지 한 달 만에 25살 전 씨를 만났다. 전 씨 집안에서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우순경을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시작했다.
 
2개월 후 82년 4월 26일 문제의 그날, 집에서 자고 있던 우순경 가슴에 파리가 내려앉아 이를 본 전 씨가 파리를 잡기 위해 우순경의 가슴을 내리쳤고 이에 불같이 화내던 우순경과 싸움이 벌어졌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지서에 출근한 우순경은 분이 풀리지 않아 소주 2병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전 씨를 때렸다. 주민이 말리자 우순경은 이웃 주민에게도 욕설, 폭행했다. 그의 행패를 두고 볼 수 없던 주민들이 거세게 반응하자 우순경은 “다 나를 무시해? 오늘 끝을 보겠다”라며 이성을 잃고 지서의 무기고로 향했다.
무기를 챙긴 우순경은 우체국의 직원 3명을 사살하고 통신망을 차단했다. 그 후 우순경은 불 켜진 집마다 총을 난사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수류탄을 던지는 등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다.
 
밤 12시 우순경은 옆 마을 평촌리에서는 장례식이 있었고 그는 부의금까지 내며 조문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순경은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고 총을 난사해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 우순경을 울음을 터뜨린 아기를 발견하고 “아직 안 죽은 게 있어?”라며 아기까지 쏴 죽였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그 시각 궁류지서 지서장과 차석은 마을 유지들의 접대를 받으러 온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우순경의 범행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났다 것에 크게 안도하며 남아있는 소총을 챙겨 들고 우순경이 이동한 반대 방향으로 도망쳐 직무유기했다. 바로 옆 면사무소에서 대피하라고 방송만 했어도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인데 그 조차하지 않아 충격을 안겼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궁류면 1시간 거리 의령 경찰서에 밤 10시 30분, 첫 신고가 접수된 것은 총을 맞은 교환 양이 죽기 전 전화선을 연결한 덕분이었다. 그 교환 양은 바로 전원배씨의 동생 전은숙씨였다. 그런데 경찰은 10시 30분 신고를 받았음에도 곧바로 마을로 향하지 않았다. 무기로 열쇠를 가지고 있는 직원이 술을 마시러 가서 출동할 수 없었다는 황당한 이유가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새벽 3시 30분, 2시간 넘게 총소리가 멈추자 그제야 경찰들이 진입을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우순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가 방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망했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우순경 사건의 총 사상자 수는 무려 90명, 사망 56명, 부상 34명이었다. 144발 중 회수된 탄환은 9발만 남겼다. 우순경이 총 135발을 쏘는 동안 경찰들은 단 한 발도 쏘지 않았고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우순경은 하루에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살인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우순경은 원래 청와대 경비대로 발탁됐다. 난폭한 주사로 인해 8개월 만에 좌천됐다. 당시 민심을 잡기 위해 전두환 대통령은 초고속 후속 조치했다. 책임자는 선 징계 후 조사했고 피해자들에게는 사고 이틀 만에 위로금과 장례비를 지급했다. 세금 감면, 자녀학비 면제 등 혜택도 주어졌다.

순경 우범곤 사건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방송화면

하지만 사건 발생 후 언론을 통제하면서 백서도 만들지 않았다. 위령비도 세우지 않았다. 우순경에 의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각자의 집에서 같은 날 장례식을 치렀고 위령비 앞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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