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29일

꼬꼬무, 모가디슈 내전서 탈출한 ‘생생+아찔’ 실화…‘훈훈’

1991 소말리아 모가디슈 내전에서 살아남은 남북한 사람들의 실화가 감동을 전했다.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는 ‘지옥에서 탈출하라 1991 모가디슈’라는 부제로 영화 ‘모가디슈’의 모티브가 된 그날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1990년 12월 경상북도 경주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16,000km의 먼 길을 떠나려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두남, 그녀가 먼 길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남편 때문,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 아프리카 케냐를 거쳐 2박 3일 만에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도착했다. 남편은 소말리아 한국 대사관 직원으로 반년만 재회였다.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 SBS방송캡처

오랜만에 만난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린 순간 대포 소리가 들리고 이후 기관총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이디드 장군이 이끄는 반군과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의 사이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소말리아에 있던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 및 교민은 총 7명, 이들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 강신성 대사의 임무는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모두를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고 대사의 관저마저 무장 강도들에게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물건을 파는 상인이 강신성 대사에게 왔고 “모레 케냐 항공기가 모가디슈로 올 거다. 그게 마지막 민간 비행기다”라며 돈을 받아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대사관 직원이 강신성 대사에게 “공항 관제탑은 연락이 되지 않겠어?”라고 하며 직원이 가까운 공항으로 가게 됐고 공항에서는 직원이 도와주겠다며 “구조기가 모레까지 오니 공항으로 오라”라는 회신을 받았다.

다음 날 약속대로 비행기는 도착했지만 공항 문이 열리지 않아 강신성 대사관 일행은 탈출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구조기는 이탈리아 비행기였고 교신 중 착오가 생긴 것이었다. 망연자실하던 강신성 대사관 일행은 다시 관저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SBS방송 캡처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내며 공항에서 뛰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북한 대사관 직원의 자녀였고 부모들까지 총 14명으로 반군들의 습격을 받고 가지고 있는 모든 재간과 물건을 털려 간신히 공항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생사를 오가는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어느 곳보다 안전하지 못한 공항에서 머물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에 차마 두고 갈 수 없었던 강신성 대사는 무장 경비가 있는 대사관저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북한 사람들은 땅에 묻어뒀던 쌀 3포대와 부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움을 청할 것을 결정했다.

위험을 뚫고 겨우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한 강신성 대사는 탈리아 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탈리아 대사는 여분의 좌석은 7-8석뿐이니 한국 사람들 먼저 대피하라고 제안했지만 “제발 우리 모두 떠나게 해달라”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SBS 방송 캡처

이탈리아 대사는 “수송기를 마련했으니 모두 함께 나갈 수 있다. 가능한 한 빨리 모두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데려와라”라고 일렀다.

함께 살수 있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21명 모두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와야 하는 위기에서 승합차 1대, 승용차 3대로 총 4대의 차량에 나눠 타기로 했다.

승합 차는 군인들의 타깃이 되기 쉬워 강신성 대사관이 운전을 맡기로 했지만 북한 무전수가 운전하겠다며 운전석에 올랐다. 그렇게 차 4대가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는 길 10분 기도 시간이 지나자 총알이 날아들었고 북한 무전수는 가슴에 총을 맞고도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해 문이 열리지 않자 강신성 대사는 차에 꽂혀 있던 태극기를 들고뛰면서 “우리는 한국 외교관이다”라고 외쳤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북한 외교관도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 잠시 후 이탈리아 대사관 문이 열렸고 총을 맞은 무전수는 사망했다. 남북의 사람들은 무전사를 한반도 방향으로 묻었다. 죽어서라도 조국에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꼬꼬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991 모가디슈 탈출 스토리 / SBS방송캡처

이후 20명 전원 중 낙오자 한 명 없이 전원 비행기에 탑승했고 14일 만에 무사히 탈출했다.

케냐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탈출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도 못했다. 허가 없이 남북이 만나면 국가보안법 위반의 상황에서 북한의 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감사했다며 “이제는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며 안녕을 고했다. 하룻밤만 더 같이 지내며 회포를 풀자는 강신성 대사에 북한의 대사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강신성 대사는 그의 생각을 알아챘다. 강신성 대사는 “한국 측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평양에서 알게 되면 질책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해 빨리 가시라고 했다”라며 당시를 설명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포옹과 악수를 나눈 이들은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납시다”라는 약속과 함께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이별을 했다.

85세가 된 강신성 대사는 문득문득 그날이 떠오르고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더 선명해진다며 통일이 되면 30년 전 북한 외교관과 그때 만난 아이들부터 찾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편,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신작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다. 지난 7월 28일 개봉해 361만 관객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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